• 최종편집 2025-07-1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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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안전 펜스를 옆에 끼고 '광명길고양이친구' 활동가들이 길을 걷고 있다 (사진=권이민수 기자)

 

낙후된 기존 도시 환경을 전부 밀어버리고 주거환경을 새롭게 조성하는 ‘재개발’은 많은 이들에게 ‘대박’에 대한 욕망을 심어주는 대표적인 거대 사업이다. 그러나 재개발로 인해 급격하게 뛰어오른 땅값과 개발 과정에서 내야하는 부담금 등은 기존 거주민을 내쫓고 사회 갈등을 부추겨 문제가 되곤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재개발은 단순 인간의 문제만을 야기하지 않는다. 빽빽하고 복잡한 이 도시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원의 터줏대감 비둘기와 동네 구석구석 자리 잡은 길고양이, 각종 식물과 곤충까지. 이 도시는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가 하나의 생태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 아래 진행되는 재개발은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특히 영역 동물인 길고양이에게 재개발은 주거 공간뿐 아니라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어 크게 위협이 된다. 최근 경기도 광명시는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대규모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 바람에 지역에서 살아가던 길고양이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밥과 물을 챙겨주던 케어테이커들이 떠나면서 양질의 식사가 어려워졌고, 건물이 허물어져 갈 곳이 없어졌다. 특성상 쉽게 머물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길고양이들은 무너지는 잔해에 깔려 압사당하기도 하고 각종 질병과 사고에 노출돼 황량한 공사장 구석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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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고양이 쉼터에서 만난 광명길고양이친구 운영진(왼쪽부터 신현아 활동가, 김재희 활동가, 김희성 활동가), 오른쪽은 오지영 대표 (사진=권이민수 기자)

 

길고양이와 시민의 행복한 공존을 꿈꾸는 지역의 비영리단체 ‘광명길고양이친구’는 어려움에 처한 길고양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밥과 물을 챙겨주고 다치고 아픈 길고양이를 구조하며 길고양이의 안전한 이주를 돕고 있다.

 

지난 4월 21일 한국고양이신문은 광명길고양이친구가 운영 중인 고양이 쉼터에 방문했다. 십 수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광명길고양이친구 운영진 신현아 활동가, 김재희 활동가, 김희성 활동가 등 3인이 기자를 반겼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고양이 쉼터는 매우 안락해 보였다. 대부분 길고양이 출신인 쉼터의 고양이들은 활동가들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상처와 질병을 치유하기도 하고 좋은 보호자를 만나 입양을 가기도 했다. 기자에게 고양이를 한 마리, 한 마리 소개하는 활동가들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 넘쳤다.

 

쉼터에서 머무는 고양이 외에도 광명길고양이친구가 구조해 보호하는 고양이들은 더 있었다. 여러 임보처에 머무는 고양이까지 포함하면 광명길고양이친구가 관리하는 고양이는 총 50마리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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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출입구멍 앞에서 밥을 준비 중인 신현아 활동가 (사진=권이민수 기자)

 

햇빛이 가장 뜨거운 정오가 가까워오자, 오지영 광명길고양이친구 대표와 신현아 활동가는 깨끗한 물과 간식 등을 주섬주섬 챙겨 쉼터를 나섰다. 재개발 지역에서 배를 곯고 있을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구조가 필요한 아이들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기자도 길고양이가 처한 상황을 가까이에서 보고자 활동가들을 따라 나섰다.

 

높다란 골리앗 트레인과 줄줄이 늘어선 안전 펜스는 이 지역에서 재개발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안전 펜스 너머는 이미 건물들이 다 헐려 땅 고르는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빛을 가려줄 구조물 하나 없는 황량한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머무는 길고양이들이 있었다. 물론 고양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광명길고양이친구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고양이 출입구멍에 활동가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안전 펜스 안에 머물던 길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흙먼지에 꾀죄죄한 모습의 길고양이는 활동가가 내미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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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출입구멍 근처에 나타난 길고양이들 (사진=권이민수 기자)

 

활동가들은 고양이 출입구멍 마다 밥자리를 마련하고 매일 밥을 주고 있다. 오 대표는 “재개발 지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양이들이 갈 데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개발이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다보면 결국 고양이가 안정적으로 이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진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재개발 지역에 7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있었지만 단체가 할 수 있는 만큼 빼내 살린 고양이는 10마리가 채 안 됐다. 오 대표는 “고양이들이 미처 피하지 못해 깔려 죽기도 하고 도망 나오다 로드킬을 당하기도 한다. 그나마 치료해서 멀리 방사시켜도 안정적으로 이주하지 못해 다시 재개발 지역으로 돌아와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신 활동가는 “실제로 내부에서 일하고 계신 인부 중에는 ‘잔해에 깔려 죽은 길고양이 시체를 목격하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다”며 길고양이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을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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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야산에 마련된 길고양이 밥자리 (사진=권이민수 기자)

 

안전 펜스를 쭉 돌자 활동가의 발길은 근처 야산에 위치한 공원으로 향했다. 길고양이가 머무는 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근접한 곳이 아니었기에 활동가들은 길이 없는 울퉁불퉁한 곳을 오르기도 했다. 카메라를 든 기자의 숨이 점차 가빠질 무렵, 길고양이 밥자리가 나타났다.

 

신 활동가는 “이 고양이들은 재개발의 위험을 피해 달아났다가 이 곳에 정착하게 된 케이스”라고 소개했다. 하루아침에 들이닥친 중장비와 무너지는 건물 틈 사이에서 길고양이들은 살기 위해 급히 지역을 이탈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고양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체로 이별하기도 했다. 길고양이 ‘온달이’는 원래 ‘평강이’와 짝궁 이었지만, 도망치는 과정에서 헤어져 재개발 지역을 사이에 두고 몇 달째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상태다.

 

오 대표는 “둘을 다시 만나게 해주고 싶지만, 이미 서로 다른 지역에 정착해 다시 가족을 잘 이룰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활동가들을 따라 안전 펜스를 돌고 근처 야산을 오르면서 생각보다 많은 길고양이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길고양이들이 이 지역에 살았다는 점과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재개발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기자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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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펜스 너머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 (사진=권이민수 기자)

 

어떤 길고양이들은 건강해 보였지만, 어떤 길고양이들은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와 돌봐주던 케어테이커의 부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급격히 건강 상태가 나빠지는 고양이들이 많다”며 “다 치료하고 싶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쉽게 구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속상해 했다.

 

사료 구입, 치료 등 길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현재 광명길고양이친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광명시와 재개발 조합, 건설사는 모두 아직 관련 조례가 없다보니 근거가 없어 아무런 지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결국 개개인의 희생이 아니면 길고양이와의 공존은 불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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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오지영 광명길고양이친구 대표 (사진=권이민수 기자)

 

오 대표는 “이 활동을 해보니 개인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와 조합, 건설사 모두가 같이 해야 한다”며 “체계적으로 길고양이를 보호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취재를 끝내고 맞은 첫 주말, 기자는 김재희 활동가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하수구에 길고양이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한 인부가 그 위에 흙을 덮어버려 길고양이가 산채로 매장됐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한 케어테이커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길고양이는 무사히 구조됐다. 만약 이를 알고 있던 사람이 없었다면 그 길고양이가 어찌됐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라진 수십 마리의 길고양이가 혹시 이 같은 처지에 놓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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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로 파묻힌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현장 (사진=광명길고양이친구)

 

재개발은 흔히 ‘아름다운 도시 미관’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며 진행된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명들의 존엄을 무시한 채 지어진 그 도시를 두고 우리는 진정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윤리와 도덕을 추구한다는 만물의 영장, 인간이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부동산 가치와 생명의 가치 중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을 수밖에 없다.

 

전체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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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재개빌에 심각성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의 욕심이 작은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 깊이 세겨 서로 공존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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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윤

길냥이들을 보호해주세요!!
제일먼저 개 고양이 식용종식하라!!
동물보호법의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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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기사 감사드립니다. 영역을 뺏긴 개발지역 고양이들에게 사링과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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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아

인간으로서 그속에 냥이가 살아있음을 알고도 덮어버렸다??
천벌을 받을것들...작은행동이 한 생명을 살리고 죽이기도 하거늘....
한심한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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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광명시 재개발 사업...사라진 수십 마리의 길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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